인천 중구 송학동과 전동을 가르는 홍예문
이 돌문은 개항기 철도 건설을 담당하고 있던 일본 공병대가 1905년 착공하여 1908년에 준공하였습니다.
무지개처럼 생긴 문이라는 뜻의 홍예문(虹霓門)은 홍여문(虹麗門), 무지개문이라고도 불리워집니다.
개항기 인천은 우리나라를 찾는 세계 여러나라의 각축장.....
이에 각국의 이민자들이 거주할 수 있는 지역을 할당해 주게 되는데
이를 '조계'라 합니다.
당시 일본은 송학동과 지금의 신포동일대에 자리 잡게 되는데
이들이 만석동의 부두쪽으로 가기위해서는 이 산을 돌아 지금의 인천역 쪽으로 돌아가야 하자
이를 질러가고 자국의 조계지를 확장하기 위하여 산을 깎아내고 지금의 돌문을 조성하게 됩니다.
이 공사를 하는데는 사연이 많았나 봅니다.
아래 사진들에서 보는 것과 같이 공사를 하다보니 악산 중의 악산..
화강암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보니
작업이 아주 어렵고 사고도 많았죠.
결국엔 이 작업에 동원된 우리나라 인부 수십명이 죽거나 다치는 일이 발생..
한 많은 문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사진은 송학동에서 전동쪽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입니다.
이 문에 얽힌 한(恨)은 축조당시만이 아니고 그 뒤에도..
어릴적 제가 듣기로는 저 위 도로에서 바닥으로 투신 자살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저 높게 쳐져 있는 울타리도 그래서 만들어진 걸로....
당은 온통 담쟁이 넝쿨로...
축대에 남겨진 곳곳의 암반..
워낙 크다보니 이를 제거하지 못하고 이를 이용해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참 대단합니다.
100년이 지났는데 어쩜 변함이 없습니다.
욕도 많이 하게 되는 일본이지만 본 받을 점도 참 많은 민족입니다...
그당시 석축과 벽돌을 혼용해서 지은 건데 물한군데 새는 곳도, 균열된 곳도 보이질 않습니다.
미래를 보는 눈은 약간 적은 듯...
차가 한대밖에 통과를 못하니
항상 반대편을 주시하고 서행으로 한방향으로만...
이길로 매일 다니고 있는 인성여고 학생들 위험해 보입니다.
전동쪽에서 송학동을 바라보며 찍은 홍여문
이 곳도 화강암은 더 크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홍예문이 개통되면서 일본인들이 전동쪽으로 조계를 확장하면서
이 덕택(?)에 이곳에 살던 우리 백성들을 강제로 이주 시킨 곳이 바로
수도국산이라는거 알고 계시나요? 쩝...
제 어릴적 기억에 이 곳 공원 올라가는 전동길이 집도 널찍하니 좋은 집들이
많았던 것도 다 이런 이유입니다. 당시 최고의 저택들이었죠.
위치 : 인천 중구 송학동 3가 20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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